봄비내리던 날
아무도 말할 수 없었어요.
저으기 아카시아꽃이 휘청거리고 있어요.
수십송이 꽃잎이 이리저리 불을 질러서
가마솥에 흰쌀밥을 지었다고요.
고속도로 빗길 달릴 때 마다
차창에 내리는 굵은 빗방울에도
하이얗게 손흔드는 아카시아꽃
거울에 비쳐요
세상에 단비를 뿌리건만
우리는 웬지 모르게 몸부터 움츠러들고
뭔가 비밀의 방속에 쏘옥 빠지고 싶은가봐요.
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
휴일만은 하루종일 멍 때리며
누워서 티비드라마에 심취하고 싶어요.
나무 이파리들의 수군거림에도
봄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쏟아지네
논에 물이 괴어서 로타리에 안성맞춤
천수답에 의존했던 옛날엔 얼마나 좋았겠니?
차창앞으로 산봉우리아래엔
작고 큰 동그라미 수풀더미들
제각각 개성을 살리며 녹색수채화를 그려댔다.
어쩌면 그렇게 눈이 맑도록
장인의 솜씨로 봄빛을 그려내니?
너만 보면 세상은 절로 행복해지고
절로 느림의 미학속으로 빠져든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