일상생활

봄비 내리던 날

목이 긴 사슴 2018. 5. 12. 21:31


봄비내리던 날

아무도 말할 수 없었어요.

저으기 아카시아꽃이 휘청거리고 있어요.

수십송이 꽃잎이 이리저리 불을 질러서

가마솥에 흰쌀밥을 지었다고요.


고속도로 빗길 달릴 때 마다

차창에 내리는 굵은 빗방울에도

하이얗게 손흔드는 아카시아꽃

거울에 비쳐요

세상에 단비를 뿌리건만

우리는 웬지 모르게 몸부터 움츠러들고

뭔가 비밀의 방속에 쏘옥 빠지고 싶은가봐요.

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야 하는지

휴일만은 하루종일 멍 때리며

누워서 티비드라마에 심취하고 싶어요.


 나무 이파리들의 수군거림에도

봄비는 그치지 않고 계속 쏟아지네

논에 물이 괴어서 로타리에 안성맞춤

천수답에 의존했던 옛날엔 얼마나 좋았겠니? 

차창앞으로 산봉우리아래엔

 작고 큰 동그라미 수풀더미들

제각각 개성을 살리며 녹색수채화를 그려댔다.

어쩌면 그렇게 눈이 맑도록 

장인의 솜씨로 봄빛을 그려내니?

너만 보면 세상은 절로 행복해지고

절로 느림의 미학속으로 빠져든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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